석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어머니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졸자로, 졸업도 하기 전에 석을 낳은 어머니는 그를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엄격했고, 부모라기보다는 교사라고 해야 할 정도의 태도에 석은 어느새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교육 덕에 석씨는 국내 유수의 대학에 진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죽음이었지만, 고통 없이 돌아가신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석은 학문에 매진했다. 어머니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만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을 석은 알아차렸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혼자 공부할 때부터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까지, 모든 장소와 시간에 어머니가 곁에 나타난 듯, 석에게 조언을 건네는 것이다.
처음엔 짜증이 났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 여자와 그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에게 석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해 주려고 생각했다.
갈등이 있으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거칠게 굴면 다독여주고,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냄비 물이 얼굴에 떨어져 큰 화상을 입었을 때는 사흘 밤낮으로 수발을 들었다. 이마에 자국이 남았지만, 그 자국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소중히 다뤄주었다.
어느 가을날, 석은 술에 취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보니 볼일을 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지만, 석은 놀라기는커녕 냉정하게 꿈속이라고 생각했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보니 이마에 눈에 띄는 화상 자국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화장실 바닥에 손을 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뒤로 쓰러져 물러났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그 모습에 석은 웃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옆에서 아이가 자고 있었다. 이제 곧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였다. 죄책감 없이 평온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깨우지 않기 위해 잠자리에서 나왔다.
아침밥을 준비하던 석은 문득, 그렇게 귀에 울리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