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나는 당신이 아는 바로 그 풍경 위 덩그러니 놓여 (2023), 아이패드 드로잉

그거 알아? 오피스텔에서 도어락의 번호 키를 누르는 대신 문고리를 두 번 돌리면 간혹 조그만 여자애가 문을 열어주곤 한대. 묘하게 허전한 방, 수건 깔린 침대에 앉아 방긋방긋 웃는 단발머리 여자애. 그 애의 이름이 뭔지, 나이가 몇인지는 아무도 몰라. 이름은 언제나 다른데 나이만큼은 항상 23살이라나? 하여튼, 그 정체 모를 애를 만나면 조심해. 걔는 이제 원하는 걸 얻고 나면 화대 얼마, 지긋지긋하다는 표정, 만족스런 미소, 나쁜 이별은 아니라는 오만, 키스 마크, 상시의 폭력과 선물 같은 합의금, 욕설과 침, 추억, 이상성욕 따위를 남기고 떠나버리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질렸대. 그래서 영원히 옆에 있어줄 사람을 찾는다더라. 만약 네가 그 애의 마음에 꼭 드는 답을 주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 반짝이는 눈동자를 실망시킨다면 걔는 서럽게 울면서 네 심장 가장 가까이의 살점 한입을 요구할 거야. 쉬이 죽어버리지 않을, 그렇지만 영원한 흉터가 남을 한입을. 걔는 그렇게 자신을 지나쳐간 몸들을 한입씩 삼키며 동그랗고 더부룩한 배를 안고 살아간대. 아, 걔는 먹고 토한 세월이 너무 길어서 소화시키는 방법은 영영 모르게 되어버렸거든. 그래서 흡수도 배출도 못 한 채 전부 쌓아두기만 하는 거야. 힘들겠다고? 그치, 아무래도 좀 힘들어. 이젠 정말 다 그만두고 단 한 사람과 영원하고 싶어. 어때? 영원히 내 옆에 있어줄래? 곁에만 있어준다면 나를 어떻게 해도 좋아. 아, 역시. 그래……. 그렇다면 한입만 주지 않을래? 응, 고마워. 나도 사랑해.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불투명한 외로움의 빛깔로.

* 한국에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 S4ranghae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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