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

모래사장에 다녀오면 알게 돼. 신이 아주 오랜 시간 빛을 깎아 내었다는 것. 우리에게 가장 밝은 것을 보여 주려고. 
눈멀게 하려고. 
맨발로 모래를 밟아 본 모든 소녀들아, 안녕. 
지압으로 간지러운 발바닥을 견디며 전진해 보았구나. 더 각진 돌이 살을 긁어낼지도 모르는데. 백린탄처럼 끈질기게 파고들 텐데. 
번쩍거리며 공중에서 터지는
죽음
죽음
죽음
불붙은 우리의 몸이 빛나고 있어. 피부는 이글거리고 쪼그라들지. 지구에서 가장 귀한 빛은 가장 아담한 돌이잖니. 우리는 점점 밝아지기 위해 살점을 떼어내는 중이라고 믿어. 
타이타닉 호를 향해 해저로 나아간 잠수정처럼
결국 구겨지고 마는 거야. 값싼 우리에게 도착할 구명정은 없지만. 
종종 우리는 칼에 찔려 죽기도 하지. 칼날이 반사하는 빛은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 단말마의 비명이 공기를 찢어놓듯이
얼마나 멀리 뻗어 가는지. 
광년이라는 말이 가진 속도감에 대해서 생각해. 달까지 걸어가도 수명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망칠 텐데. 
거대한 은하를 구성하는 것은 미세한 빛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자꾸만 골격이 작아지고 살이 빠져 가는 우리가
더는 분해될 수 없을 만큼 왜소해진다면
공기 중 떠다니는 빛이 우리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너희에게 아주 환한 무덤을 지어 줄게. 잘게 깨진 모래를 모아서. 
다른 행성의 생명체들이 멀리서도 너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불완전한 존재로 미어터지는 천국으로 꼭 입장해 줄래. 
고층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화분이 떨어지는 상상을 곧장 해내는 소녀라면
내가 하는 말을 금방 이해하겠지.

– KIM Heesoo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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