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속의 닫힌 문

단서는 너의 메모장밖에 없었어. 선로에 뛰어들기 전에 가방에 넣어 플랫폼에 두고 가버렸으니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네가 미쳐가는 것 같았고, 끼워져 있는 그림과 사진들은 조증적인 필체로 가득 차 있다.

서기 1651~1873년, 20만 명 사망
십자가형, 화형, 옥문에서 참수형에 이르는 참수형

너의 발자취를 따라 사라질 뻔한 폐허가 된 그 마을을 지나간다. 옛 매춘부의 시체가 짚으로 싸여 묘비도 없는 구덩이에 던져져 있던 절을 지나면,  중력이 나를 살인 현장의 폐허 위 어렴풋이 보이는 역으로 이끈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에 썩어가는 들개들의 연회
‘사체’는 해부되어 ‘시체’로 변해간다.

고즈카하라의 지장보살이 말을 걸어와 손을 내밀어 주었다고 네 메모장에 적혀 있지만, 지금은 그저 돌멩이로만 보인다. 분명 주석 지팡이로 나를 찔러 불길로 내 몸을 던질 것이다. 그날, 몇 번이나 걸려온 너의 전화를 무시했으니까. 뜨거운 햇살에 시야가 흐려져 예전에 보여줬던 만다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요시하라의 딸, 오피스 레이디, 캬바레 아가씨, 미혼모, 모두가 생리혈로 넘쳐나는 거대한 연못 속에 가라앉아 익사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다. 머리 위에서는 여의륜관음보살이 경전을 끓어오르는 핏덩어리에 떨어뜨리고 있다. 그 눈빛, 그 미소는 너를 꼭 닮았다.

떨리는 발로 개찰구를 지나 네가 마지막으로 섰던 곳, 4호차 4번 문 부근에 선다. 역사라는 족쇄에 묶여 너라는 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며 생과 사를 영원히 반복하는 운명을 느낀다. 손에 들고 있는 경전에 ‘축복’으로 둔갑한 저주가 내려진다. 그래, 네가 가르쳐 주었지, 지옥은 태고부터 지상에 있었다는 것을.

열린 문으로 이어지는, 네가 남긴 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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