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슈퍼마켓에 있었다. 양손에 흰 플라스틱 요구르트 통을 들고 각 브랜드의 메리트를 치밀하게 따지고 있었다. 칼로리 밀도,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양. 그리고 만약 버스나 기차, 또는 비행기 표가 필요할 때 고작 이 돈 몇 푼의 차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계좌에 지금 얼마나 남아 있더라?
사람들은 네가 이곳보다 더 부드러운 곳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얀 천과 금빛이 네 몸을 감쌌다고 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네 깡마르고 연약한 몸이, 낡은 옷에 묻힌 채 저녁 식탁 위에 쓰러져 있었다. 너는 3일 동안 복통을 호소했다. 왜 병원에 가지 않았지? 왜 네 남편은 너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지? 너는 운전할 수 없었는데.
두려움이 어깨 위에 올라타 귓가에 속삭였다. “너는 같은 저주를 공유 하고 있어. 그녀와 말이야.”
“나는 저주받았어, 저주받았어, 저주받았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고, 거울에 이마를 댄다. 아니, 나는 아니다. 내게는 절대로 그런 일 따위 일어나지 않는다. 대대로 물려받은 금 귀걸이 같은 건 필요 없어. 내 성스러운 부적은 검은색과 은색, 금속과 플라스틱.
나는 즉시 비행기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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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불운으로 인해, 나는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의 진술은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어두운 청색 종이 위에 금색 잉크로 그려진 황금연화경. 병산도, 1337년. 속죄처럼 이어지는, 수미터에 걸쳐 정교하게 서예. 서울 리움 미술관 영구 소장. 세상의 반대편에 있어도 벗어날 수 없다. 너의 몸을 다시 떠올린다.
두려움은 아파트에서 나를 다시 기다린다. 적어도 내 아파트다. 내가 지불할 대가는, 신용카드 청구서는, 내 불행의 총계는, 아직 나를 죽이지 않았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두려움일까, 아니면 네 손일까? 나는 축복 받았다.
나는 축복 받았다. 나는 축복 받았다.
